<호빗 : 다섯 군대 전투 The Hobbit : The Battle of the Five Armies, 2014>
<호빗 : 다섯 군대 전투 The Hobbit : The Battle of the Five Armies, 2014>
외로운 산의 용 스마우그가 호수 마을을 공격하러 내려오고, 마을은 불바다가 된다. 이 때 호수 마을의 바르드가 용을 죽이고 용의 보물은 주인 없이 외로운 산에 남겨지게 된다. 이 때 참나무방패 소린을 위시한 난쟁이 무리들이 보물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용이 죽었다는 소식에 요정, 난쟁이, 오크 등이 외로운 산으로 보물을 차지하러 모여든다. 외로운 산과 너른골에는 전쟁의 서막이 오르고 있다.
<반지의 제왕>뿐만 아니라, <호빗> 시리즈도 욕망에 관한 작품이다. 그 욕망은 어떤 욕망이든 간에 작품 전반을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하는데 <호빗> 시리즈, 특히 이번 <다섯 군대 전투>에서는 그 욕망이 황금만능주의로 좀 더 구체화되었다. 황금이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참나무방패 소린은, 이미 그의 동료가 말한대로 과거의 영웅적 기상을 잃어버리고 외로운 산의 보물덩이에서 홀로 앉아 황금으로 이룰 수 있는 찬란한 미래만 상상하는 '찌찔이'가 되어버렸다. 어찌 보면 그는 욕망의 화신일 뿐, 그가 오랫동안 그의 동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단지 황금으로 이루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황금을 차지할 수 있다고 믿고, 실제로 차지한 순간 이미 과거의 순수한 목적은 목적 그 자체로만 남게 되었다. 황금을 차지하기 위해 모여드는 다른 종족들도 같다. 부제 <다섯 군대 전투>의 다섯 군대는 각자 다른 목적을 가졌어도 모두 황금을 차지하기 위해 외로운 산으로 모여든다. 부자 하나가 죽자 그 재산을 차지하려고 서로 달려드는 꼴이라니...진정 '개싸움'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미 황금 앞에서 그들은 본래의 목적을 잃고 부유함 그 자체만을 위해 싸운다. 그러다 보니 가장 기본적으로 실천해야 할 대의를 저버리는 장면이 영화에서 많이 나온다. 이런 측면을 보면 마치 황금만능주의의 문제점을 꼬집는 우화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몇몇 이들은 이를 이겨낸다. 자신의 욕망을 극복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전설'이 되어 후세에 남게 된다.
또한 시리즈는 과거의 굴레를 이겨내려는 이들의 싸움들을 그려내고 있다. <반지의 제왕> 아라곤 등으로 대표되는 이 캐릭터는, 이번 작품에서 참나무방패 소린이 이런 캐릭터를 맡았다. 과거 그의 할아버지도 황금에 눈이 멀어 결국 중요한 것을 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었다. 소린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유혹을 받지만, 시련을 떨치고 일어난다. 자신의 조상들을 죽인 아조그의 심장에 칼을 꽂는 장면은, 단지 복수를 했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혈통이 나오는 중간계 시리즈에서도 특히 고귀한 혈통을 가진 소린이, 그 혈통이 가진 운명에 속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의 운명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린 뿐만이 아니라 스란두일 등도 과거에 자신, 혹은 자신의 조상이 짊어져야 할 운명의 굴레를 떨치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반지의 제왕>에도 계속 유지되는 테마인데, 여기에 예외인 종족이 하나 있다. 바로 '호빗'들이다. 그들은 사실 중간계의 일련의 사건들에서 가장 예외적인 종족들이다. 그래서 그들 나름대로 영웅이 있고 누군가의 후손인 것도 나름 중요시 하긴 하지만, 특별한 의미는 없다. 그들은 현재에 누구와 더불어 사는지를 중요시하는 종족들이다. 때문에 누군가의 고귀한 혈통이 아닌 빌보 배긴스는 과거와 싸우지도 않고 싸울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애초에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운명의 굴레 따위는 없었다. 오직 그들 스스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때문에 수많은 영웅들이 나오는 중간계 이야기들이 모두 호빗이 주인공인 것은, 호빗의 이러한 진취적인 성격 때문이 아닐까 한다.
첫 부제였던 '또 다른 시작'을 '다섯 군대 전투'로 바꾼 것부터, 이미 이 영화의 지향점은 정해졌다고 봐야한다. 사실 144분이 길게 느껴질 만큼 영화는 전투의 연속이며 연속이고, 때로는 이러한 점이 피로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대일 전투 등의 연출은 이 영화에서 정점을 찍었으며, 순수 액션 영화로만 보아도 올해 이 작품을 능가하는 작품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풍부하고 다이나믹한 액션 장면들을 선사한다. <반지의 제왕>은 대서사시, <호빗>은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평가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인데, 이번에도 HFR로 구현한 장면은 생동감을 넘어서서 흥분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반지의 제왕>과의 연결성도 상당히 좋은 편이고(팬이어서 이 점을 가장 바랬다), 특히 엔딩은 중간계 시리즈를 마무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감동적인 엔딩이다. <호빗>을 먼저 찍고, <반지의 제왕>을 찍었다면 어땠을까 종종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서가 뭔가 뭉클한 감동을 주기에 적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난쟁이와 요정의 애정 전선은 전작에서 뭔가 뜬금없었는데, 이 사랑을 '레골라스'가 보았다는 점에서 추후 그가 난쟁이와 인간과 그려낼 종족 간의 화합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보는 데에 무리가 없었다. 전편의 레골라스 같은 성격이었으면 애초에 김리와, 후세에 남을 '영원한 우정' 따위를 그리는 것은 무리라고 봐야할 것이다. 때문에 이런 점도 <반지의 제왕>과, 상당히 디테일한 연결점을 두지 않았나라고 하면서 감탄하게 된다.
드디어 중간계 시리즈 6부작, 그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고생했다'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피터 잭슨 감독 이하 모든 스탭들에게 감사하다는 말부터 전하고 싶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데, 그들 모두 끝까지 고생한 덕분에 <호빗>까지 무사히 중간계 시리즈를 마친 것 같다. 추후 <실마릴리온> 등이 영화화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나, 사실상 힘들다고 보아야하며 더군다나 피터 잭슨 감독이 돌아올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제 그는 10여년 동안 자신에게 보물이자 족쇄와 마찬가지였던 중간계를 떠나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이 되었든 간에 그를 응원한다. 작품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그의 끈기와 노력은 시리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행복을 선사해주었고 그 또한 톨킨의 팬으로서 작품을 만들면서 행복했기에 시리즈물을 만드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중간계 시리즈는 끝났지만, 그와 그의 스탭들은 돌아올 것이고 언제라도 그들의 노력이 깃든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을 것이다.
(2014년 12월 17일 메가박스 코엑스 관람 작품)